나의 이야기

폐교 하루 전, 서남대학교

dy86411 2022. 9. 1. 17:42

 

 

 

 

다른 학교는 입학식 준비로 여념이 없을 2 27, 서남대학교 남원캠퍼스는 폐교를 준비하고 있었다. 기존 재학생들은 이미 인근 대학교로 편입되어서인지 학교에서는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남원캠퍼스에는 폐교에 시위하는 교직원도, 항의하는 교수도, 목놓아 우는 학생도 없었다. 서남대에는 적막만 흘렀다

 

 

 

전염병이 휩쓸고 간 듯한 서남대학교

 

서남대학교 정문을 통과해 학교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은 스산했다. 정문 옆 경비초소부터 온갖 비품이 나뒹굴었다. 길옆에 걸린 서남대학교 정상화를 촉구하는 현수막 뒤로는 폐업한 24시간 편의점이 보였다.

 

 

 

 

누렇게 색이 바랜 운동장 잔디 앞으로 창조관 건물이 보였다. 서늘한 냉기로 가득한 건물 복도에는 먼지가 쌓여있어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먼지가 부옇게 올라왔다. 일부 실험실 문에는 학과 통폐합으로 인해 사용을 중지한다라는 알림이 붙어 있었다. 한 강의실 문손잡이를 돌리니 문이 열렸다. 강의실 안 책상과 의자는 먼지가 뒤덮고 있어서 의자에 새겨진 서남대학교라는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창조관 밖으로 나오니 승용차 한대가 건물앞 도로로 지나갔다. 학교에 들어온 뒤 처음 마주친 움직임이었다. 부지런히 승용차를 따라가니 자동차 몇대가 주차된 대학본관이 나타났다. 대학본관 유리벽 뒤로는 온갖 서류박스가 복도를 따라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박스를 살펴보니 한국사학진흥재단에 제출하는 서류였다.

 

 

 

 

대학본관 건물 안에서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추정되는 남성들이 서류박스를 옮기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날 유일하게 사람과 마주친 건물이 대학본관이었다. 건물을 한층씩 올라가며 둘러보다 4층 한 교수연구실 앞에 놓인 커다란 쓰레기통을 발견했다. 쓰레기통은 온갖 서류와 공책으로 가득했다. 제일 위에 놓인 수첩을 펼쳐 뒤적이니 수첩에는 서남대 정상화를 요구하기 위한 계획이 적혀 있었다. 수첩 다른 페이지에는 대학의 공익성이나 생존권 보장 같은 단어에 밑줄이 여러번 그어져 있었다. 학교 구성원들이 서남대 정상화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대학본관을 나와 그 옆에 있는 건물을 차례차례 둘러봤다. 문이 아예 잠긴 건물도 있었고 짓다 만 건물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의과대학 건물로 들어갔다. 의과대학 건물 1층 복도 한쪽 구석에 쓰레기가 한 무더기 쌓여있었다. 거기에는 이름과 학번,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기재된 자료도 섞여있었다.

 

 

 

 

 

의과대학 건물 2층에는 교수연구실과 실험실이 있었다. 실험실에는 위험할 것 같은 약품과 실험도구가 있었음에도 보안장치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그 위층에는 의과대학 강의실과 동아리방이 있었다. 무엇을 피해 황급히 도망치기라도 한 것처럼 교과서와 제본된 책이 방마다 바닥에 나뒹굴었다. 동아리방 방문에 붙어있는 단체 사진은 이 건물이 한때 사람들로 가득했음을 알려줬다.

 

 

 

 

 

서남대와 함께 폐허가 된 율치마을

 

캠퍼스를 나와 서남대학교 정문 뒤로 조성된 율치마을 원룸단지로 갔다. 율치마을에서는 인기척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무거운 공기가 짓누르고 있었다. 당구장과 호프집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편의점에는 인기척이 끊긴지 오래인지 고양이가 문 앞에 버티고 있었다. 율치마을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A씨는 “90년대 후반에는 서남대학교 학생이 5천 명도 더 됐다. 아산캠퍼스가 생긴 2002년에 학생들이 우르르 빠져나갔고 서남대가 부실대학에 선정된 뒤 폐교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2013년부터 학생수가 확 줄었다. 지금은 율촌마을에 거주하는 학생보다 외국인 노동자가 더 많다라고 말했다.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김태권씨도 서남대학교가 폐교된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김씨는 아산캠퍼스가 생기기 전에는 주말에 귀가하는 학생들을 태우려고 금요일 오전부터 서남대 앞으로 택시가 서른대씩 줄지어 서 있었다. 남원에 있는 유일한 대학교인데 2013년 이후 꾸준하게 학생이 줄더니 이제는 기어이 사라진다. 가뜩이나 젊은 사람들이 남원시를 떠나고 있는데 큰일이다라고 밝혔다

 

남원시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황영자씨는 타지에 사는 서남대학교 학생들이 방학인데도 학교에서 회의가 있다며 이번 겨울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며칠씩 자고 갔다. 인구가 8만도 채 안되는 남원 사람들에게 서남대학교 폐교는 엄청난 사건이다. 서남대 원룸촌에 전 재산을 투자해 건물을 올린 사람이 폐교 소식을 듣고 자살했다는 소문도 돌 정도다라고 말했다.

 

 

 

이홍하의 비리가 불러온 폐교

 

서남대학교는 전라북도 남원시 광치동에서 1991년 개교했다. 초대 총장은 사학 비리로 악명 높은 이홍하였다. 개교한 지 얼마 안 되어 서남대는 암초를 만났는데 1997 5월 이홍하 당시 총장이 대학 등록금 등 399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해 6월 서남대학교 재학생들은 관선이사 파견을 요구하며 대학 학생처장실을 점거하며 농성했고 이홍하 전 총장은 같은 해 10 1심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 등으로 징역을 3 2개월 선고받았다.

 

서남대는 이에 개의치 않고 2002 3월 충청남도 아산에 캠퍼스를 추가로 설립했으며 법학전문대학원 유치까지 추진했다. 그러나 2012 12월 교육부가 서남대 특별감사에서 이홍하의 교비 횡령 등을 적발하며 비리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감사 이후 광주지검은 교비 898억과 건설사 자금 106억 등 1천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이홍하를 다시 구속기소했다. 2016년 대법원 상고심에서 이홍하는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2017 12 13일 교육부는 서남대학교 폐쇄 명령 및 학교법인 해산명령 처분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서남대가 2015년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인 E등급을 받은 후에도 학생들의 기본적인 학습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등 한계 상황에 직면하였으며 3의 재정기여자 영입을 통한 정상화 방안도 실현하지 못한 것을 폐쇄 이유로 들었다. 서남대학교 재학생들은 인근 대학에 편입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남대를 폐교한 교육부의 결정에서 앞으로 교육부가 추진할 대학 구조정책 기조를 엿볼 수 있다. 교육부의 서남대 폐교는 비리 대학을 정리하고 대학 구조개혁 평가에서 하위 등급을 받은 대학을 퇴출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이는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대학 진학률이 떨어지는 추세를 고려할 때 많은 대학교가 서남대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럭 한 대로 폐교된 서남대

 

다음날 아침 다시 찾아간 서남대학교에는 전날보다 더 깊은 침묵이 흘렀다. 비올듯 흐린 하늘 때문에 학교 건물은 더욱 어두침침해 보였으며 오직 대학본관 건물에만 군데군데 불이 켜져 있었다. 본관 1층 출입문 앞에는 서류로 가득한 상자가 줄지어 쌓여 있었고 아직 조립되지 않은 상자는 복도 한쪽에 놓여 있었다.

 

 

 

 

한국교육진흥재단 관계자 B씨는 오전 9시도 안 되었음에도 대학본관 빈 강의실에서 노트북을 켜고 작업중이었다. B씨는 폐교라는 것이 결국 문서정리를 하는 것이다. 어제 하던 업무를 계속 이어서 한다라고 했다. 서남대 관계자가 학교에 있냐는 질문에 B씨는 위에서 업무를 전달받아서 하므로 잘 모른다고만 답했다.

 

 

 

 

오전 10시경 커다란 윙바디 트럭 한대가 대학본관 앞으로 들어섰다. 윙바디 트럭은 서류상자가 가득 쌓인 본관 앞에 주차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서남대 폐교에 대해 작년 가을에 시작된 학기는 2 28일 자로 마무리되며 3 1일부터 행정상으로 새로운 학기로 처리된다. 서남법인으로부터 재산 현황을 26일까지 보고받았고 28일까지는 서남법인이 학사운영을 하게 되어있으나 그 이후부터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기에 학사운영이 중단된다. 서남대학교 폐교와 더불어 서남법인 역시 해산되기 때문에 학교의 교육용 재산은 청산이 완료될 때까지 교육부에서 처리할 예정이다라고 전화상으로 밝혔다.

 

 

 

 

그렇게 트럭 한대로 서남대학교는 2 28일 폐교되었다.  

 

 

이상엽 / 바람저널리스트 (http//baram.news / baramy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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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2. 28 20:15 환영합니다 :), 지속가능 '바람' : 네이버 블로그에서 작성(일부글 수정, 공감 103, 댓글 2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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