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영웅이 될 수 없었어. 하지만 오빠는, 영웅이 되었지. ...그걸로 족한거야. 나는, 나같은 괴물은, 영웅이 될 수 없으니까. “
「 모은 이야기는 모았던 곳으로 돌아가고 」
전쟁이 끝나고, 마왕 시스터는 원초의 땅으로 돌아가 다시금 마족을 부흥시켰다.
이전처럼 마족을 대하는 이는 벨제뷔트의 의도와는 달리 너무나도 많아졌다. ...빼앗아간 것이 너무 많았다. 빼앗긴게 너무 많았다...
기억을 잃었었다. 그날, 마신 벨제뷔트를 만난 이후로 짧게는 수 달, 길게는 수 년 정도의 시간이 차례차례 끊겨나갔다.
하지만 분명한건 그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과, 내가 반드시 기억해야했던 한 소중한 아이를, 나는 멋대로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젠 부러져 더이상 복구할 수 없는 곰방대를 바라보면 어느샌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걸 알게 되었고, 내 눈은 항상 하늘을 좇고 있었다.
ㅡ바보같은 이아기이지만.
“ 엄마~ “
“ 그래, 이아. 무슨 일이니? “
마신 대전으로부터 또다시 6년, 이제는 35을 넘긴 나이지만, 나는 아직도 그 날을 기억한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사라지는 시공 붕괴의 세계를. 그 속에서 억지로 죽어가는 마신을.
ㅡ잊어버려선 안되었던 아이의 모습을.
이제는 16이 되어버린 이아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 세대의 현자로써 현자회에 나가고, 가끔씩 아르피엘의 선생으로 들어가는 일을 하고있었다.
아르피엘은 그날, 전쟁이 끝난 이후로 평범한 학원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당시 전쟁에서 활약한 영웅의 대다수가 아르피엘 출신이었던 덕인지, 위상은 높아져 있었고, 교육은 날이 갈수록 심각할 정도로 발전해갔다.
“ ㅡ엄마, 옛날부터 계~속 궁금했는데요… 저 곰방대 주인은 누구에요? “
“ 글쎄… 엄마도 기억이 나질 않네… ㅡ아마, 아르의… 친인척? “
“ 에~ 그게 뭐야. “
어설프긴 하지만 이것밖에 말할 수 없었다. 아르에겐 형제자매가 없었으니까.
ㅡ어라, 진짜 없었었나.
“ 그건 그렇고, 오늘 종전 6주년을 맞이해서 아르피엘에서 교장 선생님이 연설하신대! “
“ 헤에… 그 아이린이?”
교장 선생님이셨던 프라우드 선생님은 이번 전쟁이 끝난 이후 퇴직하셨고, 유일하게 멀쩡한 정신과 신체를 갖추고 제대로 된 활동이 가능하며 공개적으로도 유명한 인물인 아이린이 다음 교장이 되었다.
ㅡ그런데 연설은 이번이 처음이네.
“ 어서~ 사야랑 후는 이미 갔단 말이야! “
“ 알았어… “
“ 이걸로 끝이지? 무. “
“ 예. “
“ 그으~래, 좋았어. 자기 흔적을 여기저기에 다 뿌려놨구만 이 꼬맹이자식은. “
아르피엘의 한 학급에서, 무와 그 주인인 멸망신께서 대화하고 있었다.
“ 그건 그렇고 그 꼬마, 진심인가? 자신에 대한 존재가 없었던 것으로 하는 대신, 마신을 시공 분열에서 죽게 만들다니. “
“ 그러게요~? “
“ 정말 흥미가 없구나, 무. “
“ ...글쎄요? “
무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잡힌 구슬을 이리조리 돌려보며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걸 보고있는 주인은 정말 초조한데.
“ 무? 이제 주지 않으련? 그거 깨지면 두번다시 회수 못… 야! “
쨍그랑.
무의 손가락 사이에서 ‘ 가둬진 기억 ‘ 이 해방되었다.
분명 지워져야 할 기억이 그녀와 관계있는 이들에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야! 너… “
“ ...실수에요. “
혈압이 오르는 소리가 들리지만 뭐 별 수 있는가. 더이상 회수하지도 못할텐데.
“ ...하아… “
“ 돌아가시죠. “
“ 이걸로 끝. “
가끔씩 생각해보면, 그것도 이렇게, 영정사진을 모셔둔 곳에 있으면 그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걸 잃어버렸는지 알게된더.
‘ 열쇠를… 벨제뷔트를, 그 안에… ‘
간절했던 당신과,
‘ 그것도 제대로 못하나? 에잉… ‘
나를 혼내던 당신과,
‘ 이거 참 마음에 드는구나! ‘
즐거워했던 당신은 이제 이곳에 있습니다. ...단장님.
그리고, 이름모를 수많은 이들과, 나의 벗ㅡ아르, 그리고 어린 아이였던 미르 선생님의 아이, 미나 드래그니르.
아직도 어설펐다. 아르, 그에 대한 기억이! ...전쟁 도중, 갑자기 그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존재는 내 마음에 어설프게나마 남아있었고, 다른 누군가가 사라져있었다.
이 곳엔 없는, 영웅이 한 명 더 있다.
ㅡ전쟁에서 빼앗긴 것은 너무나도 많았다. 친구들 역시.
카일은 한쪽 팔을 잃었고.
한나는 내장을 잃었다.
바인은 두 팔뼈와 한쪽 다리가 으스러져 두번다시 활동하지 못할거라 판정받았으며
리샤는 아직도 혼수 상태…
그 이외의 친구들 역시 하나의 후유증을 가지고 돌아왔다.
ㅡ나 역시, 정신적 부분의 어딘가에 결함이 생겼다고, 진단받았다.
“ 교장 선생님~ 슬슬 시간입니다! “
“ ...그럴 시간이 다되었네요. ...저 갈게요? 단장님. “
서둘러 토요의 사진에 예를 갖춘 내가, 복장을 단정히 하고 2천의 아이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나아갔다.
한걸음 뗄 때 마다, 이곳에서 출발했던 기억들이 기억난다.
바보같이 시작된 생활은, 어느덧 우리가 아닌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있었다.
터엉, 철제 바닥에 부딪히는 구둣소리가 울렸다.
오른손에 든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친다.
ㅡ정적이 찾아왔다.
“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6년 전, 우리의 모든걸 앗아갔던 대 전쟁, 이젠 역사에 기록된 마신 대전을. 그리고 그 참혹했던 과정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
그 순간 문득, 머릿속에 어떤 기억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경쓰지 않았던 학생들 사이의, 눈에 익는 은발이, 눈에 띄는 마력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 여러분은 이제 앞으로 나아갈 시기임을 알아야합니다. “
생김새가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수인의 외모라곤 하나도 없었다. 귀도, 꼬리도. 그 바보같던 붉은 사자의 또다른 아이스런 모습이 형체를 갖추었다.
“ 20년 전, 내가 이곳에 있었던 듯이. 여러분은 지금 이곳에 계십니다. “
눈물이 한방울 흘러내렸다.
눈 움직임 하나만으로 마법을 펼치던 아이의 모습이 생각난다.
“ 그리고 그 때의 내가 그랬던 듯, 여러분은 이제 한걸음 나아가야만 합니다. “
느슨한 복장도, 그와 그녀가 좋아하는 복장이었다.
ㅡ이곳에서, 처음 보았던 옷이다.
“ 그리고 여러분은 언젠가 8년 전 내가 그랬듯, 모든걸 책임질 시간이 다가올것입니다. “
웃는 얼굴이 귀여웠던 아이였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곡을 찌르듯 아팠지만, 언제나 정답을 알려주던 아이였다.
“ 그리고 6년 전 그랬듯, 여러분은 저와 같은 전장에 서게 될겁니다. “
전장의 최전선에서 무자비하게 마법을 난사하며, 감정을 잃고 얻기를 반복하던 아이다.
“ 나는 영웅이 되었고, 여러분도 될 것입니다. “
그리고 그 아이는 영웅이 되지 못했다.
“ 두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를 지키는 영웅이. “
자신을 괴물이라 말하며 떠났으니까.
연설이 끝나고 눈을 한번 깜빡이자, 그녀는 어느샌가 없어져있었다.
ㅡ에르.
머릿속에 들어오는 단 한마디였다.
‘ 내 동생, 에르. 에타르 펜타그램 바리아닉. ‘
그가 소개했던 그녀의 여동생이었다.
“ 하아… “
인파를 헤치고 나아갔다.
내가 잊어버린 아이는. 에르는 이곳으로 들어갔다. 매끈하게, 그 누구도 모르게끔.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자, 그곳은 언젠가 우리가 학원 탐사를 하겠다고 길을 잃었던ㅡ낙엽이 쌓인 강가가 있었다.
동물들이 하나하나 모여들어 물을 찰박이며 노니는 곳에서, 하얀 바위 위에 다람쥐가 폴짝 뛰어올랐다.
그 다람쥐를 따라 올라가니, 누군가의 손에 올라가더니, 이내 그 손의 주인이 다람쥐를 쓰다듬었다.
“ ㅡ6년만인가요? 언니. “
“ ...에르… “
잊어버려선 안됐을, 나의 일족이자 그의 여동생이었다.
“ 모두에게 잊혀졌으면 좋았을텐데. 어째서 하나같이 나를 기억해내려고 하는거에요? “
“ ...기억하고 싶으니까. “
“ 언니가 기억해야할건 내가 아니라 오빠에요. “
“ 아르는 언제나 내 마음에 있어. 그러니! ...나는 너를 기억해줘야만 해. 그게 아르의 부탁이었으니까! “
ㅡ나는 사라질거야. 하지만 나는 네 마음속에 있겠지. 이 피보다 진하게 이어진 붉은 실의 인연으로. ...그러니까 부탁해. 너만은 에르를, 기억해 줘.
“ ...부탁? “
서늘한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그녀의 본래 마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가웠다. 자칫 잘못하면 모든게 얼어붙을 정도로.
“ ...잊어줘요, 나를. “
“ 싫어... 싫어. 싫어! 내가 왜 너를 잊어야만 하는건데? “
“ 나는 괴물이니까. “
영웅이 되지 못한 괴물이니까.
색을 저버리고 검은 빛으로 들어가길 선택한 검은 괴물이니까.
“ ...아니야… 아니야! 괴물이… 아니야… “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ㅡ괴물이 아니라면 기억해냈어야만 했다.
그러나 우린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녀의 마법은 너무나도 완벽했고ㅡ완벽했기에 우리는 잊어버렸다.
그건 그녀가 괴물임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하아…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 ...마음대로 하세요… “
바람이 일고, 어느샌가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ㅡ어디로 간건지, 그 이상 볼 수 없었다.
터억ㅡ
책을 덮는 소리가 났다.
“ ...가련한 이야기로군요. 정말. “
“ 그래. 맞아… 가련한 이야기이지. 마신을 죽이기 위해, 오빠를 기억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없애고 부정해버렸으니까. “
“ 이야기인가요? “
“ 이야기인거지. “
ㅡ이야기는 시작되었다.
ㅡ그 이야기는 언제 끝날까.
“ 스승님! 이거 보세요! 알터 할배가 또! “
“ ...또 그녀석? 수명은 한참 전에 지났는데 용케도 사는군. 억시 나노세포로 수명을 연장시킨건가? 쓸데없기는. “
“ 스승님의 흔적을 쫓고있어요! ...죽일까요? “
“ 내버려 둬. 제가 무슨 일을 해도 내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모르니까. “
하얀 안개로 둘러쌓인 숲, 그 중앙에는 하늘을 꿰뚫는 탑이 존재했다.
마치 도서관처럼 이루어져있는 그곳의ㅡ마지막 12층.
인간도 마족도ㅡ신에 가까운 자만이 있을 수 있는 이곳에, 두명이 있었다.
“ 스승님, 어쩌면 좋을까요? “
“ 묻지마라, 거짓말쟁이야. “
“ 거짓말쟁이라니, 너무해! “
“ 투정쟁이도 들어 가. ㅡ후… 네가 보기엔 어떠냐? 죽음쟁이야. “
“ ㅡ글쎄요? 죽이긴 힘들거같은데. 무엇보다 저 영감은… “
“ 그래, 나한테 오래 굴러졌었어. ...너도 못이길거야. “
ㅡ하얀 소녀의 금기를 손댄 대가로 얻은 죄
그리고 그 죄를 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한 아이.
“ 남은 심연은 모았니? “
“ 아직이요. “
ㅡ심연을 찾도록 해 봐.
차기작, 「 웃지않는 소녀와 거짓말쟁이 현자님 」
없습니다.
원래 의도는 있었습니다만, 섭종이니 아쉽게 되었네요. ...악마님 오신 날 21, 22화는 개인적 사정때문에 지워졌습니다. 올릴 수 있다면 올리고…
아.위.학과 악마님 오신 날은, 아르피엘과 함께 사라지도록 두겠습니다. 이곳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이곳에서 끝내겠습니다.
아쉽네요, 가끔 들어와서 뭐가 올라와있는지 보는게 낙이었는데.
철없던 시절, 2016년 8월이 시작된 이야기는, 2년하고도 3개월이 지난 2018년 11월에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20년에 달하는 이야기는 때론 즐기고, 때론 슬프고, 어느 때엔 잔혹하고. 어느때엔 아쉬웠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믿습니다. 이곳 아르피엘에서 만난 우리 유저들의 인연은 어디선가 다시 만날거라고.
ㅡ랄까요…
그럼 이제 진짜 끝을 두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다름아닌 감사입니다.
단젠 님, 감사합니다. 2년 전에 good 동아리에 들어오게 해주셨고, 그 덕에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어느 누가 보면 시간 낭비라 할지언정, 적어도 우리에겐 재미있고 즐거운 추억의 일부였다고 굳게 믿고있습니다.
그리고 피리도 님과 바넬 님께는…
…
글쓰기 연습을 같이 좀 해보도록 하죠?
네, 두분께는 감사의 말씀 없을것 같네요(진심단호근엄진지)
그리고 지금까지 봐주신 이름모를 몇몇 분들께도 감사하다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바보같은 이야기지만.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여기까지 입니다.
이야기는 언젠가 끝나기 마련, 영원히 계속되는 이야기는 없기 마련. 별의 수명도 끝나듯이, 나무의 수명도 끝나듯이, 인간의 수명도 끝나듯이, 모든 이야기는 한번씩 꽃을 피우다가, 결국엔 사라지죠. 떨어진 낙엽처럼, 떨어지는 꽃잎처럼. 하늘에서 내리는 소나기마냥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가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저는 이곳에 제가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적어도 오랫동안. 그리고 저는 마지막까지 흔적을 남기고 가게 되었습니다.
모든건 운명이듯이, 이 역시 운명이겠죠.
감사합니다.
ㅡ아 맞다, 블로그는 바뀌었어요.
언젠가 소설 하나 올릴 것 같은데 말이지만요. ...그래요, 제목은 한… ‘ 고대의 정령왕 ‘ 쯤으로 해볼까요?
언제까지 울면서 아르피엘을 보낼 수는 없잖아요?
웃는 얼굴로, 바이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