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위. 야쿠부 고원 (Yakubu Gowon)
나이지리아의 군인이자 제3대 대통령. 비아프라 전쟁의 주동자입니다. 1966년 1월 쿠데타 이후 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다가,
같은해 중순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새 수반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국가 수반이 된 후 동부 지역의 이보족을 탄압하는 정책을 펼치자, 1967년 5월 27일 이보족 지도자 '오두메구 오주쿠'가 비아프라 공화국을 세우고 독립을 선언합니다.
이에 야쿠부 고원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비아프라 전쟁을 일으켜 내전에 돌입했습니다.
야쿠부 고원 측의 승리로 이 내전이 종식된 후에도 피의 숙청으로 약 110만 명의 나이지리아 시민이 사망합니다.
1970년 1월 비아프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1970년대 중반까지 아프리카 대륙 전체 지도자로 부상했으나, 1975년 7월 29일, 역시 부하였던 무르탈라 모하메드가 이끄는 군부패하고 영국으로 망명했습니다. 1976년 2월 13일 자신의 지지 세력들과 함께 모하메드를 암살하고 쿠데타를 계획했으나 '올루세군 오바산조'에 의해 진압당하고 말았습니다.
9위.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Mengistu Haile Mariam)
에티오피아의 군인이자 정치가. 에티오피아 노동당의 우두머리로서, 1977~1991까지 약 150만 명에 달하는 반대파 및 국민들을 숙청했습니다.
에티오피아 혁명 당시, 국민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던 온건파에 맞서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켰고, 황실과 온건파인사를 모두 처치한 뒤 스스로 군사 행정 평의회 의장 자리를 차지했다가 에티오피아의 초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1991년 반정부 세력에 의해 짐바브웨로 망명했다가, 현재 북한으로 망명해 체류중인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8위. 김일성
설명할 필요가 따로 있을까 싶지만, 북한의 초대 주석인 김일성입니다. 기습적인 남침으로 6.25전쟁을 일으켰으며, 함께 정권을 창출해낸 동료들을 남김없이 숙청하고 유일무이한 권력자가 되어 현재 손자까지 3대째 권력을 세습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보통의 독재자들이 자신의 자손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경우, 2대까지 물려주는 것도 힘든 것을 3대 째 해내고 있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전쟁에 따른 사망자 수는 약 200만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전쟁 전후로 약 160만 명 이상이 숙청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7위. 폴 포트 (Pol Pot)
캄보디아의 독립운동가이자 군인. 프랑스의 지배를 벗어날때까지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마침내 독립된 뒤에도 친미 성향의 정부가 들어서자 주변국의 지원을 받아 이를 몰아내고 새롭게 정권을 잡았습니다. '썩은 사과는 상자째로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전 정권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물론 그 가족들, 그리고 정재계인사와 우호국이었던 친 베트남파까지 모조리 숙청하고, 그 주변인들은 수용소에 처넣는 등 극단적인 정책을 선보였습니다. 결국 너무 극단으로 치닫는 그를 보다못한 베트남 등 주변국의 간섭으로 정권을 잃고 게릴라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가택 연금 끝에 병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는 내전 당시보다 오히려 정권을 잡은 후에 더 많은 사람을 죽인 것(킬링 필드)으로 유명하며, 약 17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6위. 이스마일 엔베르 파샤 (Ismail Enver Paşa)
오스만 제국 군의 장성으로, 터치 청년 당원 혁명을 통해 국왕파를 제거하고 집권했습니다. 국왕을 중심으로 한 반 쿠데타 시도를 진압하면서 수많은 보수 세력을 숙청하고 정치적 입지를 돈독히 했습니다. 또한 제2차 발칸전쟁 사령관으로서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되찾는 등 뛰어난 전과를 올렸다고 합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동맹을 맺고 주변국을 점령하는 등 야심을 보여주었으나, 1918년 전쟁이 끝나고 패전국이 된 오스만제국이 해체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는 쿠데타를 일으킬 때, 그리고 국왕파의 반 쿠데타를 진압할 때, 마지막으로 1차 세계대전 참전을 주장할 때 반대파 세력을 숙청한 것 외에는 큰 학살의 기록이 없으나, 그것만으로도 약 250만 명 가량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5위. 도조 히데키
일본의 군인, 40대 총리. A급 전범으로 구분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은 그는 일본군 엘리트 가문의 3남으로, 일본의 중국 침략을 시작으로 세계대전 참전에 결정적 역할을 한 전범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쟁 초반에는 만주를 점령하고 인도차이나 반도 등에서 연합군을 몰아내면서 승승장구합니다. 중국 난징에서의 대학살, 관동 대지진 이후의 조선인 학살은 물론 전쟁에 반대하는 정치세력과 일본인 지식인층을 숙청하고 각종 인체실험을 주업무로 하는 731부대를 운영했으며, 패전 직전에는 이미 전쟁수행능력이 없는 파병부대에게 전투를 종용하여 몰살시키는 등 그의 명령으로 희생된 희생자 수만 해도 약 50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패전 직후 권총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으며, 1948년 전범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그해 겨울 교수형당했습니다.
4위. 레오폴 2세 (Leopold II of Belgium)
벨기에 왕국의 2대 왕. 해외식민지를 건설하는 것만이 국가를 위대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콩고 자유국의 창립자이자 지배자였습니다. 과학, 박애주의 단체로 위장한 '국제 아프리카협회'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어 운영했으며, 탐험가 헨리 스탠리를 고용해 콩고 지역을 탐사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콩고에서 수확할 것이 많다고 판단한 그는 외교적 수단을 통해 14개 유럽국가에서 콩고의 합법적인 지도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콩고의 영토는 벨기에 국토의 76배 크기로, 동부 미국과 비슷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상아 위주로 콩고 주민들을 착취하던 그는 국제 시장의 고무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무나무의 수액 추출에 노동력을 집중시켰습니다. 짭잘한 벌이에 재미를 들린 그는 베를린 회담에서의 약속을 어기고 외국의 콩고 접근을 차단한 뒤 콩고 영토 전체를 개인 사유지화 하여 원주민들을 모두 강제 노동에 동원하고, 할당량을 맞추지 못하면 죽이거나 불구로 만드는 등 잔인한 통치를 지속했습니다. 결국 그 악행이 널리 알려져 개인적인 지배권을 빼앗겼으나, 벨기에 국왕의 자리는 죽을때까지 내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콩고를 지배하던 23년간 무려 1,500만 명에 달하는 콩고 주민을 학살했다고 합니다.
3위.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
나치 독일의 1대 총통. 히틀러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태인과 집시 등을 학살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나락으로 치닫던 독일의 경제발전을 이끈 지도자이며, '독일 민족 생존권 수립 정책'을 주장하며 주변국을 침략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전쟁 초반 승기를 잡은 히틀러는 아리아인 우월주의를 내세우고 타민족들을 탄압하며 특히 유대인, 집시 등을 학살하는 정책으로 전쟁 사망자 외에도 무려 1,700만 명 이상을 학살했습니다. 그러나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연합군에 밀리고, 러시아와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하면서 서서히 밀리기 시작해 결국 지하 벙커에서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세계 최악의 독재자로 기억되는 히틀러가 고작(?) 3위 라는 사실에 놀란 분들이 많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음을 보시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2위. 이오시프 스탈린 (Ио́сиф Ста́лин)
러시아의 정치가, 공산주의 운동가, 소비에트 연방의 제1대 서기장. 러시아 정교회의 성직자를 꿈꿨으나, 공산주의 혁명 사상에 감화되어 종교를 버리고 노동운동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린 후 레닌의 제자이자 조력자로 입지를 다지던 그는 지나치게 러시아 중심주의, 폭력적인 수단을 활용하여 그의 스승이자 러시아의 지도자였던 레닌이 "절대 스탈린을 내 후계자로 삼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기게 합니다. 그러나 레닌의 사망 시에는 스탈린이 이미 정치 조직체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고 있었으므로 레닌의 유언은 묵살되었고, 스탈린은 최대 정적이었던 트로츠키를 암살하고 자신의 반대파를 제거한 뒤 군부마저 완벽하게 장악했습니다. 세계대전 이전까지 강력한 경제 부양책으로 집단화와 산업화를 채택하여 독일을 뛰어넘는 경제발전 속도를 보여주었으나,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국가들을 따라하는 것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불만 세력이 나타나는 등 사회에 혼란이 야기되고 있었습니다. 스탈린은 우파 인사들을 모조리 체포하여 숙청하고, 트로츠키를 따르던 수많은 정적들도 모조리 제거하면서 군부까지 모두 물갈이했습니다. 그리고 레닌이 주도했던 준 자본주의적 경제정책을 벗어나 국영산업화 정책을 채택했고, 농민들을 도시로 강제 이주시키며 이에 저항하는 이들을 암살하거나 수용소로 보내버렸습니다. 스탈린이 죽기 직전까지 그의 명령으로 암살되거나 공개적으로 처형된 희생자 수만 2,3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1위. 마오쩌둥 (毛澤東)
중국의 군인, 독립운동가, 초대 국가주석. 초기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로 일본을 중국에서 몰아내기 위한 독립운동을 장 제스와 함께 전개하였고, 훗날 장 제스의 국민당과 대결해 승리하면서 그를 대만으로 축출하는 데 성공하고 중국의 최고지도자로 자리잡았습니다. 건국 직후 소비에트 연방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지원을 얻어냈으며, 지주 계급을 숙청하고 토지개혁을 이루었습니다. 이에 자신감을 얻어 서양의 공업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공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했으나 기술의 미비와 농업 경시, 거기에 겹친 기후 이상 등으로 처절한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는 반대파를 숙청하고 책임을 피하기 위해 후임인 류샤오치에게 전권을 넘기고 막후에서 그를 조종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후계로 삼은 류샤오치는 스스로 정책을 진행하고자 하며 번번히 마오쩌둥과 충돌하였고, 결국 마오쩌둥은 자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홍위병들을 이용해 '문화 대혁명'이라는 이름의 쿠데타 아닌 쿠데타를 진행해 반대 세력을 또다시 숙청하고 다시 막후에서 중국을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퇴진을 요구한 '천안문 사태'에도 오히려 동료이자 경쟁자인 덩샤오핑을 제거할 기회로 삼아 정권을 유지하려고 했으나 사태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고, 결국 그는 철저히 고립된 채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덩샤오핑은 죽은 그에게 모든 책임을 넘기되,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며 건국의 영웅인 그를 깎아내리지 않고 국가의 아버지로 존경받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가 토지개혁을 하며 숙청한 지주 세력과 정권 유지를 위해 제거한 반대파, '대약진 운동'과 '문화 대혁명' 등에서 죽인 사람의 수를 합하면 무려 7,80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오늘은 세계의 독재자이자 학살자들에 대한 포스팅을 남겼습니다.
기록상으로는 이들을 따라잡지 못했고, 또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이야기를 꺼내기 조심스러워지는 문제이긴 하지만, 비슷한 역사가 우리에게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모든 독재자의 최후가 처참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의도는 모르겠지만 방식이 분명 정의롭지 못했던 그들의 독재가 미래에는 또 어떻게 평가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는 분명히 승자의 기록입니다만,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의 역사도 과연 승리자만의 역사로 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과거를 알고(여기서 우리라 함은 우리 나라, 민족만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을 왜곡이나 포장 없이 다음 세대에 똑바로 전달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포스팅은 여기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2015.2.4 17:16 피체크의 블로그 : 네이버 블로그에서 피체크(s_fitzek)님이 일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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